캄보디아에서 드리는 67번째 이삭 공동체 이야기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성경 속의 부자청년 이야기는 우리를 집요하게 따라 다니는 불편한 진리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에(마19. 막10, 눅18) 모두 등장하는 단골 청년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가장 중 요하게 여기는 영생과 구원에 관한 질문에 정확한 답을 예수님께서 주신 내용입니다. 예수님 은 부자청년에게 계명을 지킬 것을 말씀하시면서 마태복음에서는 마가와 누가복음에서는 포함 되어 있지 않았던 계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부자청년은 이 계명 또한 성실히 실천해왔고 예수님도 인정할 만큼 아주 괜찮은 신앙의 소유 자였습니다. 저도 이정도면 됐지 뭐가 부족하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청년에 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버전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은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실천적 신앙과 지성과 영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까지 겸비한 행정고시 출신으로 출세가도를 타고 있는 장래가 촉망되는 부 자청년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 부족한 점은 부자청년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재산(돈을 비롯한 기본적 유동성 재산)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개인의 부 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적한 부자 청년의 소유는 희년의 법에서 허용하는 그 이상 으로 소유하고 있는 토지에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19절을 통해 희년의 통합 적 성취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부자청년에게 부족한 것은 그 당시 사문 화 된 희년의 법을 포함하는 율법의 온전한 완성이었습니다.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까지도 나름 성실히 실천해왔던 부자청년을 통해 예 수님은 오랜 세월동안 잊혀 왔던 희년의 법을 다시 상기를 시키고 회복을 시키고자 하시는 의 도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영생의 문제와 결부시키고 있습니다. 부자청년이 가지게 된 토지는 자신이 모은 토지는 아닐 것입니다. 그럴만한 나이가 아닙니다. 요즘 표현 으로 하자면 부모를 잘 만난 금수저 같은 사람이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일 것입니다. 이 청년 부자에게 레위기 속에 잠자고 있었던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희년의 법을 다시 깨워 가난한 자에 대한 적극적이고 구조적인 해결을 위한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단골손님 부자청년과 예수님의 대화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삶과 교회와 선교 사 역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무엇으로 비교하더라도 부자청년보다 훨씬 못한 점수입니다.   첫째, 부자청년과 우리의 개인적 삶을 비교하고자 합니다. 부자청년은 예수님께서 인정할 
만큼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증거, 속이지 말라. 부모공경, 이웃사랑에 대해 실천해왔지만 우 리는 자신이 없습니다. 이 기준으로 볼 때 우리는 기준이하의 삶임을 인정합니다.    둘째. 부자청년의 삶과 교회와 교회 지도자는 어떻습니까? 세상과 비교하여 예수님께서 말 씀하셨던 율법적 사항에 얼마만큼의 우위에 있습니까? 자신이 없습니다. 내일이 멀다하고 사 회면에 톱기사로 등장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범죄는 이제 더 이상 당황스러운 기사거리가 아닙 니다. 훨씬 부자청년의 삶이 뛰어납니다.   셋째, 우리의 선교사역과 비교하고자 합니다. 선교는 밖으로 나가는 원심적 선교와 안으로 들어와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주며 변화가 되도록 하는 구심적 선교가 있습니다. 우리의 선교방향은 그동안 나가서 전하는 원심적 선교에 집중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선교 는 두 가지 선교가 균형을 이룹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내 예수님의 사랑이 충만하고 나 눔을 실천하는 코이노니아적 삶이 가득해야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변화가 되고 또 칭송 을 하게 됩니다.       교회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칭찬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것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 건물이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칭찬하지 않습니다. 교회 성가대가 찬양을 아름답게 잘 한다고 외부 사람들이 칭찬하지 않습니다. 제자훈련 프로그램이 좋다고 칭찬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한다고 칭찬하지 않습니다.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고 단기선교를 많이 나간다고 칭찬하지 않 습니다. 이것은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관심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교회 공동체가 다양한 사회문제를 위해 노력할 때 외부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를 칭찬을 할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청년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때, 빚진 사람들의 빚 을 탕감해주는 일을 할 때,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 줄 때,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도와 줄 때, 소외된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쉼터가 되어 줄 때 그리고 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영적인 문제인 줄을 알고 기도하고, 해결을 위해 연구하고, 대안을 만들고, 나눔을 실천할 때 사회는 교회를 칭송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위에 열거된 개인의 삶, 교회, 선교적 관점에서 부자청년과 비교하여 더 나은 것이 없다면 부자청년처럼 한 가지만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총체적 결여의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우리는 근심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좋기 때문이 아니라 왜곡된 의미로 이신칭의(以信 稱義)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두렵고 떨림이 있습니다. 그럼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제자들처 럼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내가 해야 된다면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 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에 적용이 됩니다. 비즈니스든, 직업적 일이든, 선교사역이든 무엇이든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
가 주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정확하게 있을 때 우리에게는 이것이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떠한 권리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선교지에서 선교사는 아무런 권리가 없습니다. 선교사역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대표라고 하더 라도 우리에게는 어떤 권리가 없습니다. 회사는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역할을 각자가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에서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온전하고자하는 열망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영광을 보고 싶은 열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자에 나누어주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두려운 선택이 아닙니다. 주의 영이 임하시면 자원적 희년이 선포됩니다. 땅은 원래의 주인에게로, 빚은 탕감을 받고, 종은 자유인이 됩니다.       희년을 어떻게 우리의 삶과 교회 공동체와 선교지에서 적용하고 풀어갈지 기도하고 연구해 야 합니다. 계명을 지키는 수준의 삶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과 국제사회 전반에 걸쳐 드러나고 이루어지는 희년의 선교가 이루어지도록 전략을 세우고, 변화를 가져오도록 실천을 해야 합니다. 선교에 새로운 패러다 임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약하지만 강하고, 겸손하지만 존귀함을 받고, 섬김으로 나가지만 왕의 권위를 가진 경세적 영성으로 물질과 자본주의에 편입되지 않는 희년의 정신을 담은 공동체적 선교 모델이 일어나 는 것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부족하지만 저희에게 이 소원을 주셨고, 이 마음으로 16년을 씨 름하고 있습니다. 피곤함도 느끼고 외로움도 느끼지만 이제 100m 출발선에서 출발을 기다리 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기는 혼자 뛰는 경기가 아니라 계주입니다. 저는 100m만 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다음 바통을 캄보디아 현지 동역자들이 받아 들 고 뛰어야 되는 릴레이 경기임을 좀 늦게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출발이 늦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출발선에 서있다는 느낌은 있는데 계속 출발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릴레이 주자가 각자의 위치에 서 있어야 바통을 들고 출발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저희에게 준비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희년의 정신을 담은 하 나님 나라 중심의 공동체적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부족하지만 곧 다음 편지로 소개해 드 리고 좀 더 구체적인 기도제목들을 드리겠습니다. 계속적인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2016년 9월 늦은 밤 캄보디아에서 김기대 류소현 예혁 예성 예린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