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님이 내가 제일 가기싫어하는 곳으로 나를 부르실까봐 두려웠다.

아프리카. 내가 제일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라고 하실 까 봐 두려웠다.

선교사.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모기를 잡고 독화살을 피하며 칼로 정글을 뚫고 지나는 타잔 영화들이 기억났다.....

하나님 어디든 좋습니다. 아프리카만 빼고.

결국, 아니 현재까지라고 말해야 하리라. 그분은 나를 아프리카로 부르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은 다른 사람들을 그곳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 부르심에 자신의 인생으로 응답했다.

그중 한사람이 알버트 슈바이처다. 그 부르심은 어린 시절에 왔다.

 

자라면서 슈바이처는 고통 받는 세계를 위해 기도했다. 그 동상이 일깨워 준 것이다. 어린시절에도 그는 자신의 평탄하고 행복한 삶이 선물임을 믿었으며, 그런 선물을 받은 데 대해 늘 빚진 마음을 가졌다.....그후 그는 음악과 종교와 철학을 공부해 각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르심은 분명했지만 어떠한 부르심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았다. 또 하나의 아침을 맞을 때까지. .....그의 시선을 붙든 글은 "콩고 선교의 필요"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왕의 물음에 '주님,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교회에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 기사를 읽는 것으로 그의 탐색은 끝났다. 자신이 아프리카로 부름받았다는 확신이 온것이다. 그는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슈바이처의 경우, 맨처음 부르심은 유년의 삶 중에 찾아왔다.

유럽의 어느 마을 광장에서 아프리카 전체를 내다보던 순간이었다. 1886년 어느 봄날의 또 다른 순간에서 그 부르심은 좀더 분명해 졌다. 그리고 마침내 1904년의 어느 가을날 또 하나의 순간이 열리며 그 부르심은 아침 햇살처럼 선명히 모습을 드러냈다. 

 -켄 가이어 작품"영혼의 창" 중에서 발췌;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하며 피해가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무슨 거창한 부르심을 생각하면서,그리고 우리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시키실까봐 지레 겁먹지 않고, 지금 있는 곳이 쓸데 없는 곳이라고, 부르심과는 상관없는데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들볶으며 공중에 떠서  헤메이기 보다는 매일의 일상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시는 "인상"을 소중히 가꾸어 그 부르심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슈바이처 처럼,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때가 오는 것이다.....